* 1923년
- 워렌 하딩 대통령(미국의 대통령 평가에서 42명(오바마 제외. 아직 평가하긴 이르므로) 중 주로 꼴찌를 달림.) 사무실에서 사망 -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그의 행정부가 막을 내림. 상대적으로 깨끗하다고 평가받던 캘빈 쿨리지 대통령 당선. 쿨리지 대통령은 자유방임주의, 불간섭주의자 노선을 수호. "The business of America is business.".
* 1924년
* 1925년
- 최고 세율이 25%로 인하 - 1차 세계 대전 이후 8 년 만에 가장 낮음
- 대법원은 무역기구에 약간의 경쟁만 존재한다면 반독점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함.
* 1928년
- 건설업의 붐 종료.
- 농업의 비중이 국민 소득의 15%(1920년)에서 9%로 감소
- 1928년 5월에서 1929년 9월 사이 주식의 평균 가격이 40 % 상승. 거래량이 하루 2~3백만에서 5백만 이상으로 폭증. (Crazy… 얼마전 얘기인 듯 하죠?)
* 1929년
- 허버트 후버 대통령 당성. 쿨리지 대통령만큼 자유방임주의자는 아니었지만 후버 대통령 역시 철저한 개인주의자지였음.
-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최소 생활 수준(a minimum subsistence level) 이하로 생활.
- 일인당 연간 소득 $750; 농업 종사자들은 $273.
- 1년 전보다 비즈니스 재고량이 3배로 증가. 소비의 급속한 감소.
- 화물 수송량, 제조업 생산량 급감.
- 10월 대폭락 9개월 전부터 자동차 판매량이 1/3 가량 감소
- 대폭락(The Great Crash) 2개월 전인 8월부터 불황(Recession) 시작. 이 두달간 생산량 20% 감소, 도매가 7.5% 하락.
- 10월 24일 폭락 시작. 10월 29일 "검은 화요일.” 10월 한달간 손실액 $160억.
- 농민들을 위한 “Agricultural Marketing Act”(농업 마케팅법) 의회 통과
* 1930년
- 2월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에서 금리 인하 (6% –> 4 %). 하지만, 향후 1년 반동안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서는 실제로 경제 위축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자금 투입은 거의 없었음. 재무 장관 앤드류 멜론은 Fed는 시장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지켜볼 것이라 발표할 정도.
- 6월 Smoot - Hawley 관세법 통과. 40%의 관세 부과. (현대 경제학자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관세가 미국 대공황 해결에 그리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고 평가.)
- 첫번째 금융공황(banking panic) 발생. 뱅크런 발생. 자금 흐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예금 손실 및 은행 파산 속출.
-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증가하지만, 아직도 majority는 안됨.
- 전년대비 GNP 9.4% 하락. 실업률 8.7%로 증가 (전년 실업률: 3.2%)
* 1931년
- 대공황 해결을 위한 특기할만한 법안 없음
- 제2의 금융공황(banking panic) 발생.
- 전년대비 GNP 8.5% 하락. 실업률이 15.9%.
* 1932년
- 32년, 33년은 대공황 최악의 시절. GNP 13.4% 하락. 실업률 23.6 %.
- 1930년 이후 주식 가치의 80% 손실
- 1929년 이후 만여개의 은행 파산 (29년 전체 은행 수의 약 40% 은행 파산)
- 1929년 이후 $20억 예금 손실
- 1929년 이후 천삼백만 여명 실업자 발생
- 1929년 이후 농산물 가격 53% 하락
- 1929년 이후 국제무역 1/3로 급감
- Fed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자금 공급 시행
- 정부에서 the Reconstruction Finance Corporation(재건 금융 공사) 창설.
- 의회에서 Federal Home Loan Act (연방 주택 융자 법령)와 Glass-Steagall법 통과
- 최고세율을 25에서 63%로 인상
- 후버 대통령의 이러한 조치들이 대중들로부터 너무 약하고 너무 늦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9월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됨.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
* 1933년
- 루즈벨트는 취임 후 소위 “First 100 Days(첫 100 일)"이라는 강도 높은 입법 활동을 시작함.
- 3월 제 3의 금융 공황(banking panic) 발생. 루즈벨트 Bank Holiday(은행 휴일) 선언; 뱅크런 방지를 위해 아예 금융기관들을 한동안 문닫고 쉬게 한 정책.
- 루즈벨트의 방향, 즉 부자로부터 부를 거두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려 한다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백만 장자 그룹들(듀퐁, JP 모건 등)의 주도하에 1차대전 영웅 스메들리 버틀러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사 쿠데타 도모. (시나리오에 따르면 백만장자 그룹은 50만의 군대와 무제한적 재정 지원을 약속. 백악관을 점령한 다음 대통령을 명목상의 국가 수반으로 만들고는 버틀러가 실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음.) 하지만 버틀러 스스로 쿠데타 모의를 의회에 폭로하여 무산됨. (수습은 어떤식으로 진행되었을까요? 당시 참모총장인 더글러스 맥아더는 용의자들을 붙잡아 고문하며 배후를 캤..을까요? 그런 기록은 없답니다. 쿠데타의 타겟이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 잡아 족쳐!’ 그랬을까요? 침묵으로 일관했답니다. 왜그랬을까요? 대재벌 그룹들과 일부 공화당 중진의원들까지도 가담한 이 모의의 전말이 다 폭로되고 가담자 모두에게 징벌이 가해진다면 뉴딜 정책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을까요?
- Agricultural Adjustment Act (농업 조정법), Civilian Conservation Corps, Farm Credit administration, 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Federal Emergency Relief Administartion, National Recovery Administration, Public Works Administration, Tennessee Valley Authority, Emergency Banking Bill, Glass-Steagall Act, Farm Credit Act, 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 등등의 법안들(휴~많다) 의회 통과. (이들 중 AAA, NIRA 등은 추후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고 향후 많은 경제학자들로부터 적절치 못한 정책이었다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어쨋든… 이렇게 많은 법안들이 한꺼번에 좌~악 통과될 수 있었던 이유가 혹시… 쿠데타 모의를 덮어주는 조건으로 ‘다들 내가 하자는거 다 통과시켜’ 식 진정한 New Deal의 결과는 아니었을런지?)
- 미국 금본위제 탈피
- GNP 하락속도 완화 (2.1% 하락). 하지만 실업률은 지속증가 (24.9%)
* 1934년
-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the National Mediation Board,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설치
- Securities and Exchange Act, Trade Agreement Act 등 의회 통과
- 드디어 Turn around! GNP +7.7%! 실업률 21.7%로 하락
- 스웨덴이 첫번째로 대공황 탈출
* 1935년
- National Recovery Administration에 대하여 대법원 위헌 선언.
- 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 Rural Electrification Administration 설립안 의회 통과
- Bannking Act of 1935, Emergency Relief Appropriation Act, National Labor Relations Act, Social Security Act 의회 통과
- 경제 회복 지속: GNP +8.1%, 실업률 20.1%
* 1936년
- Agricultural Adjustment Act에 대하여 대법원 위헌 선언.
- 이에 대해 의회는 Soil Conservation and Domestic Allotment Act 통과
- 최고 세율 79%로 올림
- 경제 회복 지속: GNP +14.1%, 실업률 16.9%
- 독일이 전쟁준비를 위한 공격적인 정부지출(이로 인하여 큰 폭의 재정적자 발생)을 통해 세계에서 두번째로 완전히 대공황에서 회복
* 1937년
- National Labor Relations Board에 대하여 대법원 위헌 선언.(37년 한해동안 대법원은 행정부가 제출한 16개의 법안 가운데 11개를 거부해 버림. 이에 격분한 루즈벨트는 대법관 숫자를 늘려서 자신의 뜻에 맞는 인사 여섯명을 추가하려고 함. 이러한 시도는 무산되었을 뿐더러 대중의 분노를 야기시키는 계기가 됨.)
- 지금까지의 실적(GNP 성장, 실업률 감소 등)에 만족한 듯, 루즈벨트는 정부 지출 삭감을 통해 재정 불균형에 대한 조절을 시도함.
- 5월경부터 다시 불황(Recession) 시작
- 하지만 연간 GNP는 여전히 +5.0%. 실업률 14.3%.
* 1938년
- Agricultural Adjustment Act of 1938, Fair Labor Standards Act 의회 통과.
- 루스벨트 대통령의 영향력 쇠퇴 등으로 인하여 주목할 만한 뉴딜 법안 없음.
- GNP -4.5%로 급락. 실업률 19.0%로 증가. 불황 지속.
- 영국 역시 전쟁준비를 위한 정부지출(및 이로 인한 재정적자)을 통해 세계에서 세번째로 대공황에서 회복
* 1939년
- GNP 7.9%, 실업률 17.2 %로 주요 경제지표 호전.
- 미국 역시 차입금 $10억을 군대 정비에 지출하는 등 전쟁과 관련된 지출 증대. 대공황에서 완전히 벗어남.
-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세계대전 시작.
(참고자료: The Forgotten Man, by amity shlaes / wikipedia / Steve Kangas, "The Great Depression: Its Causes and Cure," Liberalism Resurgent (THE_GREAT_DEPRESSION.htm, 1997)).
전 경제학자도, 역사학자도, 그렇다고 대공황 전문가도 아니라서 본의 아니게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부분들이 있다면 절 너무 미워하지만 마시고^^ 친절한 댓글로 수정해 주신다면 저는 물론이고 이 글 보시는 모든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줄로 믿습니다.